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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현대인의 질병

글 알랭드 보통/ 은행나무 출판

 

 누군가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이 대부분 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20대에는  혼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힘든 시절을 보낸다.  40, 50대가 되면 안정적인 모습으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막상 실상은 인생에 복병이 많아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알랭드 보통'이 정의하는 불안의  원인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가 정해 놓은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을 따르려는 데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SNS의 발달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점점 불행에 빠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대다.  

요즘 초,중등 학생들도 심리 검사를 해보면 우울증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안은 전 세대에 걸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질병이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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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Cause)

 

- 사랑의 결핍

크게 사랑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부모나 연인이 주는 사랑과 세상이 주는 사랑이다.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고개를 쳐든다. 우리는 '무시'라는 감정에 아주 취약하다. 반면 지위와 이름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이 주목한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 속물근성

 속물근성(snobbert)이라는 말은 1820년대 영국에서 귀족과 구별하기 위해 작위가 없는 사람 앞에 적는 단어였다. 그후 이 단어는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됐다.

속물근성은 사회적,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우리는 어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 받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갈망한다. 아첨꾼들은 권력이나 명성이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지위에 상관없이 진정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상대는 이런 속물의 무리를 멀리 하려는 경향이 있다.

속물근성은 애초에 집단적인 성격을 띤다.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긴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팔고 다니거나 호사스러운 장식물에 연연하는 것은 화려한 물건을 과시하여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 기대

물질적 발전은 실제적인 궁핍은 줄어들게 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에 대한 공포는 늘어났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중세신분 제도처럼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에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19세기 초부터 서양의 서점들은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자서전이나 아직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한 조온집, 인격을 일괄적으로 개조할 수 있고 금세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훈담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의도와는 달리 그들을 슬프게 한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루소-

 

- 능력주의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능력주의 체계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 불확실성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 고용주의 이익, 세계 경제)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네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사업체가 피라미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피고용자로 이루어진 넓은 밑변은 관리자들로 이루어진 좁은 꼭짓점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상을 받고 누가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작업장을 억압하는 분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며, 이런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불안이 자라나게 된다

 

● 해법

- 철학

철학자들은 남들이 우리를 보는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욕은 근거가 있든 없든 우리에게 수치를 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잇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철학적 접근방법의 장점은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 예술

"샤르댕은 배 한 알이 여자만큼 생명으로 가득할 수 있고, 물단지가 보석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머는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 정치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교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니라 관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

"나를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닌까? 하고 묻게 된다.

 

- 기독교

우리 자신의 유환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은,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잊히고 무시당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결,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아편에는 해독제가 없다.....몇 세대가 흘러도 나무를 몇 그루는 그대로 서 있다. 그러나 유서 깊은 집안이라 해도 떡갈 나누 세 그루만큼도 오래가지 못한다." 

광대한 풍경 역시 폐허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다독여주는 효과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인 평등 덕분에 승자 앞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야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 두 도시

아우구스투스는 두 가지 가치 체제로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로 나누었다. 신의 도시는 이웃을 사랑하고,겸손과 자선을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세속 도시는 돈을 모으고, 별장을 짓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도시이다.

 

- 보헤미아

보헤미아와 부르주아지를 궁극적으로 갈라놓는 것은 대화의 화제나 후식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누가 높은 지위를 얻을 자격이 있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문제였다. 보헤미안들은 저택을 소유했건 다락방을 소유했건 처음부터 19세기 초에 탄생한 경제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지위 체계에 맞서는 입장이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 -소로우-

 

보헤미안 시인은 기독교의 순례자처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지만,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시 자체가 무시당하는 자의 우월성의 증거가 된다.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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