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책을 3번째 읽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박완서 선생님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헌정 개정판으로 나온 책을 읽었다.
겉표지가 하드 보드로 책이 무직하다. 담고 있는 내용처럼.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책의 내용과 내가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이 많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놀랐다.
■줄거리:주인공 '나'는 박적골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숙모, 숙부들과 살고 있다.
엄마는 아빠가 충수염으로 죽은 후,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유학을 갔다. 엄마가 떠난 뒤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지낸다.
어느 날 엄마는 주인공 '나'를 데리러 박적골에 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떼어 놓기 힘들어 하지만 결국 엄마를 따라나서게 된다.
엄마를 따라간 서울집은 실망스러웠다. 기대와는 달리 현저동 산꼭대기에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형편은 이렇지만 엄마는 '나'를 위장 전입 시켜 매동 국민학교에 보낸다.
하지만 '나'는 위장 전입이 들통날까 봐 노심초사하게 되고 서울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있는 아이가 된다.
오빠는 졸업 후 조선총독부에 들어가지만 곧 그만두고 엄마의 기대를 져버리고 와타나베 철공소에 취직한다. 주인집 눈치를 보며 지내던 '나'는 얼마 후 주인집 아이와 싸우게 되고, 엄마는 갑자기 산꼭대기에 괴불 마당집을 산다.
엄마는 서울에 장사를 할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맡겨놓은 친척 돈으로 덜컥 괴불 마당집을 계약했다. 그 후 오빠의 월급으로 그 돈은 해결되지만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오빠는 태평양 전쟁이 터지고 기술직이 전쟁에 끌려나가는 것을 보고 직급에 차별을 주는 군수 회사를 그만둔다.
오빠에게는 사귀는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건강이 몹시 안 좋아 병원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엄마는 오빠를 이기지 못하고 결혼을 시킨다. 그렇게 좋아하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만 결국 건강 악화로 여자는 죽게 된다.
진보와 반동이 대립하는 시기, 오빠는 좌익에 물든다.
오빠의 영향으로 나는 대학에서 민청에 들어가게 된다. 삼선교로 이사 간 뒤 오빠가 좌익에 심취해 있는 것을 불안하게 보는 엄마에게 하필 삼선교로 이사간 후에 방 한 칸을 세 놓은 집이 오빠보다 더한 좌익 사상을 가진 남자의 가족이 들어오게 된다.
어느 날 그 집 남자는 경찰에 끌려가고 엄마는 차마 방을 비우라는 말을 못 한다.
6.25가 터지고 서울이 공산당에게 점령당했을 때 ‘나'의 집은 세 들어 살던 남자를 포함한 공산당이 한동안 지내게 된다.
서울이 다시 수복되고 이 일은 공산당에 부역했다는 밀고로 우리 가족은 조사를 받게 되고 '나'는 모욕적인 욕을 들으며 추궁을 받게 된다.
나는 대학에서 박노갑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오빠는 시골 중학교에 취직하게 되고 다시 결혼 한 올케 사이에서 아들이 생긴다. 혼란한 시기, 오빠는 시골 학교 사택으로 이사할 것을 제안하고 엄마는 오빠가 좌익 활동을 했던 것을 불안해하며 하루빨리 사택으로 이사가길 원한다.
하지만 이사가기 전, 오빠는 의용군으로 끌려간다.
어느날 의용군에서 도망 나온 오빠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과 같지 않았고 몹시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 가족은 피난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피난을 가기엔 오빠의 상태는 어려웠다. 엄마는 한강 남쪽으로 가는 대신 현저동으로 가기로 한다. 현저동은 모두 피난을 가고 텅 비어 있었다. 주인공 '나'는 산꼭대기 동네에서 텅 빈 도시를 내려다 보며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엄마는 우리가 가난하니까 사는 건 문 밖에서 살아도 할 수 없지만 학교는 문 안에 있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처럼 외증조할머니는
엄마를 신여성으로 키우려고 하셨다.
7명의 오빠 밑에 막내딸로 태어난 외증조 할머니는 대단한 양반집으로 집정원에 두루미가 살며,
때가 되면 기생과 소리꾼들을 불러 집안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곤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자란 할머님은 일제 강점기에 흉흉한 소문에 건너 마을 양반집에 서둘러 시집을 보냈지만
외증조 할아버지는 이미 폐병이 있어 딸 1명만 낳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귀하디 귀하게 자란 외증조 할머니는 별안간 어린 과부가 되었다.
외증조할머니는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외증조할머니의 그때 형편을 보면 하늘과 땅만큼 간격이 크게 벌어진 신세를 어떻게 견디셨을까 싶다.
나는 외증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렇게 어린 신부가 낳은 딸이 시집가서 낳은 첫 번째 손녀가 내 엄마였다.
외증조할머님은 어린 엄마가 되어 자식에게 느끼지 못했던 모정이 외손녀에게 쏟아졌다.
늘 업고 다녀 걸음도 늦게 떼었다고 하셨다.
귀한 외손녀를 아무 국민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주소를 옮겨 교동 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
집과 거리가 멀어 행낭 아범이나 외증조 할머님이 학교에 업고 산 하나를 넘어 등교시켰다고 했다.
할머님은 시대가 변해도 평소 늘 말끝마다 ‘상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은 어린 나에게 반항심이 생기는 말이었다.
이미 할머님이 사셨던 세상은 아닌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돈키호테처럼 사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할머님이 그렇게 무시하는 ‘상것’들은 세상에 적응해 잘 살고 있는데
할머님은 아직도 어린 시절에 머물러 계셨다.
어찌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외증조 할머님은 엄마와 사셨다. 그 당시는 대가족으로 살아 그러려니 했다.
할머님은 남존여비 사상도 강해 같이 살고 있는 외증조 손녀들을 예뻐하시지는 않았다.
엄마는 아끼셨지만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우리들 때문이라고 여기셨다.
가끔 찾아오는 친손자와 차별도 심했다.
심지어 11살 차이 나는 나의 막내 동생을 학교에 갔다 오면 내 등에 업히곤 하셨다.
우리는 그 집을 괴불마당 집이라고 불렀다. 마당이 괴불처럼 세모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같이 그 집에 만족했고 또한 사랑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우리 집은 집을 지어 살았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거처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다 지어진 집에 우리 가족 외에 외증조 할머니를 포함해 이모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
새집이었지만 살 가족이 많아 방은 부족했다.
나중엔 창고 같은 방을 추가로 지어 나와 막내 이모는 그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급조해 지은 방이라 볼품없었지만 그 방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고 그 방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 집 주변은 새로 짓는 집들이 생겨나고 예전이라 땅 지형 그대로 짓다 보니
우리 집 위에 축대가 생기고 우리 집은 축대 아랫집이 되었다. 그 후 축대집으로 불렸다.
엄마는 그날 물장수를 완전히 상객 취급을 했다(중략)
“그 영감이 그래도 아들을 사각모까지 씌운 생각을 하면 난 절로 우러러 뵈더라”
당시로는 드물게 외손녀에게 교육열을 불태우시던 외증조 할머님이나 엄마는
자식들 공부엔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엄마 말대로라면 수업 중에 잘 들으면 그걸로 됐지 따로 공부가 뭐가 필요하냐는 말이다.
아무래도 엄마는 머리가 참 좋으셨던 것 같다.
한 번은 고등학교 진학을 상담하러 간 외할머니가
선생님 앞에서 딸이 공부를 안 해 고등학교를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셨더니
선생님이 얘가 못 가면 누가 가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들어가기 힘든 고등학교에 엄마는 붙었다.
.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고 돌아가고 싶은 추억일 수 있다. 나의 외증조 할머님처럼…
외증조 할머니에겐 갑자기 바뀐 세상이 이제는 찾아도 볼 수 없는 싱아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의 어린 시절을 거쳐 6.25를 겪으며 정치적 이념으로 인한 갈등과 숱한 고난
공허함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한 줄 한 줄 눈으로 꾹꾹 담아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상처의 회복과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거를 용서하고 상처를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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